대구 중구 골목투어 중 2코스 근대문화골목은 원래 화교협회(소학교)에서 출발하여 동산선교사주택까지 총 1.64km를 약 2시간에 걸쳐 투어하는 코스이나, 실제로는 거리상의 문제 때문에 제가 갔을때는 이상화, 서상돈 고택이 있는 계산예가에서 출발하여 뽕나무골목 계산성당 → 3.1만세운동길 → 청라언덕의 코스로 진행되었습니다. 총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인것 같았어요!

 

[2코스 근대문화골목 코스]

 

 

 

 

대구 중구 골목투어 코스의 첫번째 코스는 계산예가에서 시작했어요! 계산예가는 이상화, 서상돈 고택 옆쪽에 위치하며, 근대 문화에 대한 영상물들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계산예가에서는 보고 느끼고 체험한 근대문화의 흔적을 스탬프로 찍어 추억으로 담아 갈수도 있어요!

 

 

계산예가 내부에는 음악, 미술 등 대구 계산동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이야기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계산예가 한옥전시실의 경우에는 골목투어를 하다가 쉬어갈 수 있는 편의시설도 만들어져 있어요!

 

 

계산예가는 사진의 일반전시실과 한옥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일반 전시실에는 대한제국부터 한국전쟁 후 산업화시기 이후의 시대까지의 시대상을 영상과 연표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계산예가 바로 옆에는 [이상화 고택]이 있는데요! 이상화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비탄에 빠진 우리 민족의 정서를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끌어올림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시인입니다. 사진의 고택은 이상화 시인이 말년(1939~1943)을 보낸곳으로 마지감 작품인 "서러운 해조"를 지은 장소입니다.

 

 

이상화 선생은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항일시인인데요! 사진의 고택에서 돌아가실때까지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였지만, 이상화 선생의 시가 조선인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한 일제 순사가 원고를 모두 압수하여 실제로는 생전에 시집 하나도 발간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상화 선생이 직접 사용하셨을 책상과 의자가 당시의 예술혼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이상화 고택 맞은편으로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 선생이 사셨던 고택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로부터 국권을 찾고자 나라 빚을 갚자는 모금활동으로 대구를 중시으로 일어났습니다. 마치 우리가 IMF 시절에 금모으기 운동과 흡사한 경우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에 나라가 뺏길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더욱 절실하였을 것입니다.

  

 

서상돈 선생은 구한말 장사꾸으로, 청렴한 선비로 또한 교육가로 사셨는데요! 1850년 김천에서 태어나 17살 부터 보부상을 하여 큰돈을 벌었고, 대지주가 되었지만, 나라의 위급앞에서 자신의 재산을 투척하고 국채보상 운동을 제의하여 시작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은 각종 개발계획에 의하여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대구 시민들의 서명운동과 후원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계산예가에서 계산성당을 가는 길목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로 파병되어 귀화한 두사충 장군이 뽕나무를 심었다는 설화가 있는 뽕나무거리를 거쳐갑니다.

 

 

제가 갔을때는 토요일 오후여서 제법 구경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계산성당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성당입니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설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습니다.  1911년에 주교좌 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 중축을 하여 1918년 12월 24일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어요! 계산성당의 평면은 라틴십자형이고,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첨탑 2개를 대칭구조로 세웠으며, 앞면과 양측에는 장미창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계산성당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진은 대구 제일교회의 모습입니다. 대구 제일교회는 대구, 경북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서, 조선말 부산선교부에 주재하던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 목사가 경상도 북부지역 순회전도 여행중 1893년(고종30년) 4월 22일 대구 읍성에 첫발을 디딤으로써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산병원 정문에 있던 100주년 기념종탑의 모습입니다.

 

 

사진의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에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있는 나무입니다. 초대병원장인 존슨박사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가 된것입니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은 1893년부터 대구를 찾아와서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1910년 경 지은 서양식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1907년 대구읍성 철거때 가져온 안산암의 성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붉은 벽돌로 쌓았습니다. 건물의 전체적인 형태와 내부 구조는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대구의 초기 서양식 건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사진은 선교사 챔니스의 주택으로 이 건물은 1910년경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주택입니다. 건축양식이 당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풍으로, 지금까지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은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요! 공휴일과 일요일은 휴관이어서 내부는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의료선교박물관 관람시간은 평일 10:00~17:00이며, 토요일은 10:00~12:00까지 입니다. 

 

 

동산의료원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는데 이름이 은혜정원입니다.

 

  

선교사 챔니스의 주택의 옆면 모습입니다. 하얀색 후면과 빨간 벽도의 전면이 대비되어 이쁘죠!

 

 

이 현관은 제중원(1899)을 전신으로 한 대구 동산병원의 구관 중앙입구였습니다. 대구 동산병원 구관은 제2대 동산병원장 플렛쳐가 1931년 신축하였습니다. 대구 동산병원 구관은 대구 최초의 서양의학병원으로 1941년 태평양 전쟁 중에도 경찰병원으로 사용되었고, 1950년 6.25전쟁시에는 국립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010년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공사로 인하여 현관부분만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대구 골목투어의 마지막은 청라언덕에서 "동무생각"을 부르며 마무리했습니다. 골목투어를 해보니 평소에 대구에 살면서도 대구의 근현대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 부분이 많았고, 좀 더 깊이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코스다 한번 다녀보고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Posted by 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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