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구의 맛과 멋, 볼꺼리를 알려 드리는 Story In Daegu입니다.오늘 종앙로에 볼일을 보고 잠시 짬이나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대구 근대 역사관에 잠시 들려보았습니다. 대구에서 20간 살면서도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싶네요! 여러분도 근처에서 짬나시면 1~2시간 코스로관람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대구근대역사관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관 건물은 원형이 잘 보존돼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됐습니다. 2008년 대구도시공사가 이 건물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증했으며 이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단장돼 2011년 1월 문을 열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박물관에는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관람안내

 ▶휴관일: 1.1, 설날, 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관람시간

 -4월~10월(하절기): 09시~19시

-11월~3월(동절기): 09시~18시

-관람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완료

 

▶관람료: 무료

 

대구 근대역사관 가는 길(약도)

 

 

대구 근대역사관은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내려서 4번 출구로 나오시면 되구요! 버스는

(만경관 하차) 323, 400-1, 427, 939, 북구3

 (경상감영공원 하차) 202-1, 303-1, 349, 410-1,503, 623, 704, 706, 730, 금행2, 동구1-1, 동구2

※대구 근대역사관은 주차장이 없는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사용료

 

 

 

역사관 외관 전경입니다. 옛날 느낌 나죠!

  

내부구조도

 

 

1층은 상설전장, 2층은 기획전시장으로 이용중입니다. 층간 이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셔야 해요.

  

 

처음엔 입구가 헷갈려요! 길에서 보이는 쪽이 아니라 북측에 입구가 있어요(내부 구조도 참조)

 

 

1층 상설 전시실 들어가기 전에 홀이에요!

 

 

가방은 가지고 들어가도 별얘기 없더라구요! 그래도 들고다니기 무거우니 사물함에 넣어두시면 편하죠.

아니면 1층 안내데스크에 잠시 맡겨두고 나중에 찾아가도 되는거 같더라구요.

 

 

1층 전시장 처음에 구성된 조선식산은행실! 안에 들어가면 창살로 격리된 금고처럼 만들어 놨어요.

일제시대 느낀 팍팍나요.

 

 

옛날 은행 사진과 연혁 등에 대해 설명되어 있어요.

 

 

옛날 돈, 아 십전, 오십전이라니! 당시 이승만 대통령 초상이 들어가 있네요.

 

 

어음증서 등!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연혁입니다.

 

 

옛날 모형이 만들어 놨구요!

  

 

 

1900년대 초 경상감영 모형입니다. 경상감영은 조선의 지방 행정의 8도제하에 경상도를 관할하는 감사가 직무를 보는 관아로서 현대의 도청과 같은 역할을 했어요.

 

 

부영버스 영상체험실 입니다. 1929년 7월 1일 처음 도입된 대구 부영버스를 타고 근대 대구거리를

체함하는 곳으로 부영버스는 5개의 노선이 있었는데 본 체험영상은 4호선을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화면이 시작되면 창문의 풍경과 함께 옛날 대구 시가지 모습을 대구 사투리를 이쁘게 구사하는

차장 아가씨의 음성으로 들을수 있어요.

 

 

 

대구 아리랑을 아시나요? 

은 1936년 밀리온 레코드사를 통해 <대구 아리랑> 최계란 가야금 명창이 을 녹음 하였다네요.

 

노랫말은

``낙동강 기나긴 줄 모르는 임아,

정나미를 거두려고 가실라요

아롱아롱 아리린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로 후렴 아롱형인게 특징이라 하네요!

 

 

일제시대 일력거^^

 

 

 능금에서 섬유로 대구의 발전과정! 아~~ 옛날엔 서울에서 소문 난 알부자는 다 섬유사업으로

 돈을 벌은 대구사람이라 했건만, 지금은 뭘 해야 대구가 잘 살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삼성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커 나갔습니다. 옛날엔 제일 모직 공장도 있었죠!

하지만 대구가 사업하기엔 적당치 않았나 봅니다....

 

 

 

 1층 상설전시장 내부 전경입니다.

 

 

1층 상설전시장 내부 전경입니다.

 

 

 2층 기획전시관입니다.

100년전

북성로를 걷다

2013.10.15~

 

북성로는 1736년 축성된 대구읍성이 1906~7년 일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허물어져 길이 된 곳입니다. 이 길은 대한제군의 황제가 강압적으로 걸었어야 했으며, 우선적으로 정비되어 일본인들의 상업거리로 변모한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대구의 가장 번화가였던 북성로는 조선인들의 원망의 대상인 동시에 근대인의 욕망이 투영되는 공간이었습니다. 본 전시는 북성로의 변천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전시와 함께 100년전 북성로를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2층 엘리베이트앞 체험 학습실입니다.

 

 

 복도에도 대구 옛 풍경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멋지죠! 연못에~ 저런 집이면 완전 대갓집일 듯~

 

 

 북성로 기획전시관 입구입니다.!

 

 

 

  기획전시관 내부 전경입니다.

 

 

영상 자료실도 있구요!

 

 

 내부 전경입니다!

 

 

 북성로에 있던 미나카이 백화점에 대한 내용도 있네요!

 

 

북성로 옛길 전경과 근현대 물건들입니다.

  

 

대구읍성을 쌓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조선은 18세기 초에 이르러 읍성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이는 읍성이 평상시 백성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방어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유형원 등의 주장에 바탕을 둔 것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은 읍성축성을 서두르는 계기가 되었다.

 

1731년 동래읍성이 1734년 전주읍성이 축성되었으며, 1736년 관찰사 민응수에 의해 대구읍성이 축성되었다. 둘레는 2,214보, 높이는 18척, 여첩은 819개소 만문 2곳이 있었다.축성공사는 동래, 전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레를 제작하고, 공역을 수행하여 역군을 아끼고 공사기간을 크게 줄였으며, 직종이 분화되고, 담당구역제를 통해 건축생산성을 향상시켰다. 이러한 축성경험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의 건립에 밑바탕이 되었다.

 

 

성이 무너지고 길이 되다

 

1869년 관찰사 김세호에 의해 보수된 대구읍성은 1905년말 철도국과 일본수비대에 의해 동문 부근의 성벽이 해체되었다. 1906년 7월 대구군수 겸 관찰사서리에 박중양이 취임하면서 성벽의 철거는 가속화되는데, 일본인 거류인단과 제휴한 그는 중앙정부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철거를 강해하였다.

 

1906년 11월 거류민단은 도로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듬해 3월 성벽지 도로를 걸설하기 위해 5천원을 투입하였고, 4월 철거를 완료하였다. 하지만 철거가 완료되었을 뿐 성들과 흙이 정리되지 않아 길의 역활을 하지 못하였다.

 

황제가 걷다

 

1909년 1월 7일 8시 10분 출발한 순종은 오후 3시 25분 대구역에 도착했다. 21발의 축포가 발사되었으며, 지역의 문무관, 사화원 등이 맞이하였다. 순종의 남순은 통감 이토히로부미의 제안에 의해 실시되었다.

 

이는 조선의 관행을 깬 대 사건이었다. 순종은 경상감영에 마련된 행재소에 머물며 달성관에서의 환송회에 참석했다. 8일 9시 10분 대구를 떠나, 청도, 마산 등을 방문한 순종은 12일 11시 45분 대구역에 도착 달성공원을 들러 행재소로 돌아와 관리, 부민 등을 접견한 뒤 13일 오전 8시에대전으로 떠났다. 이를위해 대구에서는 도로를 개수하고 좁은 곳의 가옥을 제거하거나 집 앞을 잘라내 도폭을 확장했으며, 예정코스에 흰모래를 깔았다.

  

 

대구 북성로 옛 지적도입니다.

Posted by 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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